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쿠가와 이에미츠 (문단 편집) == 인물됨과 일화 == [[조선]]의 [[성종(조선)|성종]]이나 [[숙종(조선)|숙종]]처럼 밤에 몰래 시장통에 나오는 미행을 좋아해서 이와 관련된 일화도 많이 남겼으며 무예와 풍류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.[* 인물상은 [[조선]]의 [[성종(조선)|성종]]과 닮은 점이 많다. 자신의 치세가 자기가 다스린 나라의 안정기였다는 것도 그렇고, 많은 일화를 남긴 것도 그렇고, 주변에 유능한 신하들이 보좌를 했다는 점 등... 특히 '''여자'''들과 얽힌 이야기가 많다는 것. [[정희왕후|기가 센 어머니]]를 두었다는 것과 [[카스가노츠보네|뒷바라지 해 준 여인]]의 덕을 봤다는 것도 공통점. 중국의 황제 중에서는 [[인종(송)|북송의 인종]]과도 비슷한 면이 많다.] 특히 당대의 유명한 검호인 [[야규 쥬베이]]와는 그럭저럭 친밀한 편이었다고 한다. 그리고 위태로웠던 후계자 자리를 지켜줘서인지 몰라도 할아버지 이에야스를 대단히 존경하여 때마다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발언을 자주 하고, [[유언]]도 "나는 죽어서도 할아버님을 모시고 싶으니, [[닛코시|닛코]][* 이에야스의 무덤인 '''[[닛코 동조궁|동조궁]]'''이 있는 곳]에 나를 묻어달라."고 말했다고 한다. 그래서 지금도 이에미츠의 무덤은 이에야스의 무덤 근처에 있다. 오죽하면 이에미츠가 [[쇼군]]이 된 후 "간밤에 할아버님을 꿈에서 뵈었다."면서 그리게 한 <영몽(霊夢)도>가 현재에도 여러 점 남아있다. 몸은 대체적으로 병약해서 몸이 아플 때마다 '''"이불을 5, 6겹이나 껴 입고 잤다."'''고까지 했을 정도. 거기다가 입도 짧아서 [[카스가노츠보네]]가 식사 때 일곱 가지 밥을 준비했다고 한다. 어릴 때부터 기가 센 어머니에게 질린 나머지 여성들, 그중에서도 신분이 높은 여성들을 싫어하게 되어 [[오오쿠|미다이도코로]]였던 정실 [[다카쓰카사]] 타카코와는 신혼 초부터 거의 별거하다시피 했다. 거기다 남색가여서 유모 [[카스가노츠보네]]와 이모 [[조코인]]이 후계자를 얻기 위해 아름다운 여성을 소개시켜 이에미츠의 관심을 끌려 했다. 그러다 카스가노츠보네가 조카인 오후리노카타(お振の方)를 [[남장여자|남장]]시켜 소개해주었고, 이게 통했는지 이에미츠는 오후리가 어른이 되자[* 현대 성인인 20대가 아닌 그 당시 어른으로 대우받는 10대 초반.] 측실로 들였다. 오후리 사이에서 딸을 낳은 뒤 그렇게 자식들도 보고 [[여성혐오증]]도 가라앉게 되었다. 정실인 타카코와 다르게 측실들에게 잘해줬고, 특히 [[에이코인|오만노카타]]를 가장 총애했다.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들 쪽 후손은 증손에서 허무하게 끝났다. 매체에서 --오만노카타가 주인공이어서-- 이에미츠의 딸이 존재하지 않는 거 마냥 묘사되는 것과 다르게 딸 쪽 후손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은 21세기 현재까지 남아있다. [[전국시대(일본)|전국시대]]에 살아남은 인물인 [[다테 마사무네]], [[도도 다카토라]], [[타치바나 무네시게]] 등을 존경했으며 그 당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. 특히 마사무네에게 당시 지나치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대우를 해줬으며 '''"나는 날 때부터 [[쇼군]]이다!"'''이라는 말도 마사무네의 조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. 이에미츠의 성인 이름을 골라준게 마사무네였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